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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조회 수 5586 추천 수 0 2011.04.25 12:39:57

노동운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난리, 북새통, 그리고 냉정함

난리가 났다. 아니, 뒤집어졌다.

노동운동의 타락, 정규직 노동자의 극단적 이기주의, 이경훈 집행부의 무리수...등등 수많은 표현들이 난무한다.

이 정도면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알 것 같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2011년 단체협약 요구안에 포함된 ‘정년퇴직과 장기 근속자 자녀에 대한 채용 가산점’ 조항을 둘러싼 여러 입장과 태도들이다.

자본진영의 언론과 이데올로그들은 참으로 신이 난 듯하다. 마치 노동조합에게 무엇인가 큰 것을 기대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노동조합의 이기주의와 노동운동의 타락을 비판하고 있으니 그 가증스러운 태도에 역겨움이 올라온다. 노동조합의 이기주의를 지적하려면 이재용과 정의선, 최태원에 대한 부의 세습에 대해 지금만큼이라도 열을 내면서 ‘자본가의 타락과 비도덕성’을 똑같이 질타해야 한다. 그것도 하지 않았던 언론들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단협안에 대해 맹공을 퍼붓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일부 진보적이라는 신문들까지 덩달아 호들갑에 가세하는 모양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운동의 여러 사람들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단협안을 보고 실망과 안타까움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그 심정,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은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채용 가산점은 별개 문제

 

기업 단위 채용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가 과연 ‘지나친 것’인가에 대해서 냉정하게 되물어야 한다. 물론 현대자동차는 이미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고, 불법파견 판결 상태에서 그 분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과 장기근속자 및 정년퇴직자 자녀에 대한 채용 가산점 부여가 동일한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는 아니다. 불법파견은 대법원 판결대로 하면 되는 일이지(이것에 힘을 쏟아 투쟁하지 않는 현대차 집행부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신규)채용 문제로 대체할 사안은 아니다. 냉정함의 출발은 여기서부터이다. 불법파견 처리와 (신규)채용문제를 섞지 마라!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이 두 문제를 섞어버리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치 (신규)채용 문제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파견으로 판정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지만 이미 현대자동차 생산과정에서 투입인력으로 잡혀 있다. 고용형태가 불법이므로 자본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부분이지 채용으로 둔갑할 문제는 아니다.

채용은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채용은 생산량이 늘어나고 생산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적정 노동강도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이 당장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이다. 정년퇴직한 노동자들의 자리를 비워두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일은 당장 중단하고 새롭게 노동자를 채용해야 한다.

 

채용에 대한 가산점 요구는 고용 현실의 반영

 

현대자동차 생산직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라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자동차 생산직 정규직 일자리가 이렇게까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는지 참 씁쓸하다. 그만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채 흘러다니는 비정규 일자리만 만들어낸 한국의 모든 자본과 신자유주의를 내걸었던 모든 정권들이 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단체협약 요구안은 참혹한 대한민국 고용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대의원들은 지극히 ‘정규직’스러운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자기 ‘요구’를 드러냈다. 자기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신들의 자녀를 보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자기들에게는 아주 소박한, 그러나 800만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행복에 겨운 요구를 내놓았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대의원들이 비정규 노동자와 실업자들을 생각하면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면 좋았겠지만 자식들이 먹고 사는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는 2011년 대한민국의 정규직 노동자가 내놓을 수 있는 요구는 ‘채용가산점’이 최대치가 아니었나 싶다.(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다가올 9월에 벌어진 현대자동차 및 금속노조 선거를 둘러싼 복잡한 계산과 역학도 작용하고 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만약 노동조합이나 대의원들이 채용 시 사내 비정규직 40%를 우선 채용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50%나 60% 정도로 확대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공정하고 객관적인 채용’ 혹은 ‘평등과 연대의 원칙’을 말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비정규직 우선 채용 조항은 어떻게 볼지 의문이 든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우선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그 잣대라면 ‘평등과 연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비판할 수 없다면, 장기근속 및 정년퇴직 정규직 자녀에 대한 채용가산점 역시 비판될 수 없다.

 

문제는 노동운동의 고용 대응

 

더 큰 아쉬움도 있다. 고용 문제를 자기 공장, 기업 안에서 풀려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대목은 정말 가슴 아프다. 그런데 그것이 현대자동차 지부만의 책임이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 원인과 대책을 잘 못 말하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번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 가산점을 정말 제대로 비판하려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고용정책과 그 대응 방식까지 포함해서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고용의 문제를 자기 공장, 기업 안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은 지난 10여년 간 민주노조운동이 후퇴하고 퇴행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제 아무리 거대하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속한 하나의 지부일 뿐이다. 민주노총도 금속노조도 하지 못하는 일을 현대자동차 지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현대차 지부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것은 산별노조 지부에게 요청할 일이 아니다.

 

전면적 고용확대를 위한 노동시간단축을 요구하자

 

실업률이 4%를 넘기고 청년 실업이 9%대를 육박한 상태에서 물가는 오르고 가계부채는 쌓여가는 이 팍팍한 현실. 그런데 재벌들은 사상 최대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총수와 그 일가들이 주식 떼부자가 되고 있는 현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생각 있는 노동조합이라면 실업해소와 노동강도 완화, 분배 정의 실현을 위한 대대적이고 전면적인 고용 확대를 재벌과 정권에 요구하면서 작업장 안으로는 노동강도 완화 및 작업통제 완화를, 밖으로는 노동시간단축을 전면에 내건 투쟁에 나서야 한다. 진정한 계급적 진보는 여기에 있다.

 

현대차 지부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지부에게 자기 요구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말할 필요는 있다. 사회적 책임과 태도를 가지라고 말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지부는 지금 ‘주간연속2교대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현재 정규직 인원과 생산량을 전제로 한 교대제 개선 정도로 접근하는 경향이다. 현대차 지부가 조금이라도 사회적 책임을 생각했다면 정규 자녀에 대한 채용 가산점을 내걸기 이전에 ‘잔업과 특근 반대/거부’를 전면에 내걸고 그로 생긴 여유분을 신규 일자리로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야 한다. 장시간 노동체제와 성과급 임금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런 일자리에 자기 자녀들을 밀어넣으려는 단순한 요구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을 맺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채용가산점을 주어서라도 자기 자식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하는 속내를 이번에 확실히 드러냈다. 그것이 고용세습이라고 방방거리는 분들은 정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를 이어서라도 정규직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하는 부모된 마음이 왜 생기는 걸까? 그것은 비정규 일자리만 양산하고 정규직은 채용조차 하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정말 계급적이고 비타협적인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 정규직 노조에게 고용세습만은 안 된다고 훈수를 둘 일이 아니라 더 계급적인 방식으로 고용과 채용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계급적인 방식이란? 노동시간단축과 그것을 통한 일자리 창출(나누기)이다. 사회적으로는 실업과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으로는 더 인간다운 생산체제를 위해 대대적인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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